스위스 비밀계좌 자금 1조원의 한국증시 유입이 확인되면서 국세청의 역외탈세 추징 작업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세청은 스위스 뿐만 아니라 홍콩, 말레이시아 등 지금껏 조세피난처로 이용돼 온 국가들의 협조를 얻어 역외탈세범의 해외 금융계좌를 전면적으로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국세청이 올 1분기 동안 외국에 비거주자, 외국법인으로 위장해 조세피난처에 소득을 은닉한 기업과 사주 등으로부터 추징한 역외 탈루세액만도 41건 4741억원에 달한다.
역외탈세는 조세피난처 국가에 유령회사를 만든 후 그 회사가 수익을 올린 것처럼 조작해 국내에서는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역외탈세 추적을 위해서는 해외에 재산을 숨기기 위해 어느 은행에 계좌를 만들고 어떠한 금융거래를 통해 자금이 활용되고 있는가가 파악돼야 한다. 이번 스위스 비밀계좌에 있던 거액의 자금이 국내 증시에 유입된 것을 포착한 것도 때문이다.
역외탈세 추징의 핵심은 국가간 협조다. 대부분 조세협약 등 양국간 협정으로 효력을 갖게 된다. 국세청이 가장 주력하는 것도 이부분이다.
이번 스위스 비밀계좌 자금 관련해선 스위스측이 자발적으로 비거주자들의 추가추징금을 걷어 우리에게 보내준 것이다. 아직은 계좌 정보를 알려주는 수준이 아니다. 의혹이 생겨도 잡아내거나 압류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스위스 조세조약 개정안이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비준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국세청은 끈질진 협상 끝에 스위스와의 기존 조세조약에 금융정보 교환규정을 추가로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는 우리 세정당국이 특정 계좌를 지목해 정보를 요구할 수 있고 스위스 측에서도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지금처럼 추측으로 예상하는 수준을 넘어 ‘검은머리 외국인’을 정밀타격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국세청은 ‘선박왕’으로 불리는 권혁 회장과 ‘구리왕’ 차용규씨가 스위스 계좌에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파악하고,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조세조약 개정안이 비준되면 정식으로 스위스 당국에 관련 계좌내역을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나아가 국내 대기업의 정기 세무조사 등에서 해외 법인이나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스위스 계좌에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가 포착되면 이 역시 엄청 대처키로 했다.
4100억원의 역외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의 문제가 관심을 끄는 홍콩도 우리 국세청의 주요 공략국가다. 우리 국세청은 홍콩과는 아직 조세조약을 맺고 있지 않지만 올해 들어 이미 1차 협의를 끝냈으며, 연내에 탈세조사 목적의 정보 취득을 허용토록 하는 내용의 조세조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말레이시아와는 최근 조세조약을 체결하면서 조세피난처로 이용되고 있는 라부안에 국내 조세법을 적용하는 데 합의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역외탈세범들은 해외 조세피난처를 안전한 `탈세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며 “국제 공조가 갈수록 강화되면서 국부유출을 초래하는 역외탈세범들이 설 땅은 앞으로 좁아질 수 밖에 없고, 강력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규기자 @kyk7475>
kyk74@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