準전시 상황을 방불케하는 리비아 반정부시위로 한국 건설업체의 피해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벵가지 지역에 체류하고 있는 건설 근로자 수백여명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다. 벵가지공항은 이미 폐쇄됐으며, 일부 육로까지 차단됐다. 트리폴리공항을 이용할 수 있지만 리비아 당국의 행정마비로 출국비자를 받지 못해 사실상 발이 묶인 상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22일 일대 통신까지 두절됐다. 대우건설 현장 내 마련된 안전시설에는 대우건설 소속 350명을 비롯, 피신해온 현대건설 직원 등 600여명이 모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본사 상황실에서 현지 근로자들의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통신수단이 없어 상황이 여의치 않다”며 “현재 대피한 직원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등은 외교부와 알자리라 등 아랍권 방송 등을 통해 현지정보를 얻고 있다. 현대건설도 해외영업본부에 비상대책반을 마련했지만 회사차원에서의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시내 은행 거래업무가 중단되고, 출입국을 담당하는 이민국 업무 자체가 마비되는 등 현지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말했다.
귀국로도 차단됐지만, 무턱대고 현지를 떠날 수도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건설업 특성상 현장에 고가 건설장비가 산재해있고 또 사업장을 떠나서는 공사진척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동시장은 국내건설업체의 해외핵심 시장이다. 지난해 국내건설업체는 중동지역에서 472억 5000만달러, 전체 해외수주액의 66%를 중동지역에서 확보했다. 특히 리비아는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함께 중동에서 손꼽히는 발주국이다. 현재 현대건설, 대우건설, 한미파슨스, 신한 등 총 24개사 1343명이 진출해 53건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주택단지, 호텔 및 복합화력 발전소 건설등이 대부분이다.
건설업체 한 관계자는 “직원들의 신변안전이 최우선이지만 완전철수로 공기가 지연될 경우, 보상시 국내 건설사측에 귀책사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계약체결시 치안 악화, 전쟁 등의 외부요소로 건설 현장피해 및 공사 기간에 따른 비용 등이 발생할 경우, 보상받을 수 있도록 작성하지만 건설사의 직접적인 귀책사유가 없어야 한다. 기업신뢰도도 문제다. 다른 업체 한 관계자는 “섣부른 철수 등으로 한번 현지의 신뢰를 잃으면, 수년간 쌓아온 사업기반이 무너지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정국불안 속에 공사대금 회수에 대한 불확실성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1990년대 말 리비아에서 공사대금 회수가 지연돼 국내업체들이 애를 먹은 적이 있다. 또 정권교체 후, 새 정부가 추구 미수금 일부의 탕감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남아있는 공사물량은 82억달러 규모다.
<김민현 기자@kies00> kie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