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세 성행, 주택임대시장 판도변화
임대주택시장의 주류를 형성했던 전세제도가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 잠실ㆍ서초 등 강남권 일부에서 촉발된 반전세 성행은 분당ㆍ목동 등 실거주수요가 몰리는 전세인기지역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지난 11일 분당 이매동에 위치한 현대공인중개사에 확인 결과, 등록된 반전세 매물은 서현동 시범단지에서만 22개에 이르렀다. 10여개 남짓인 순수전세 물건과 비교할 때 월등히 많은 수치다.
목동 일대도 상황은 비슷하다.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1~14단지, 2만 6000세대)의 임대 매물 중 10~15%는 반전세다. 송파구 잠실 리센츠(5563세대)의 경우, 지난해 말 실제 성사된 거래 중 20~30%가량이 반전세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단지는 입주 2년차에 접어들면서 전세값이 폭등한 탓에 오른 전세금 일부를 월세로 내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전세는 꾸준히 증가, 주택임대의 주요 형태로 자리잡은 상태다. 국민은행이 발표한 지난달 임대차 계약 중 반전세 비중을 살펴보면, 월 1월 40.2%로 전년 동기간대비 1.4%가 증가했다. 연도별로는 2003년 34.6%에서 2005년 37.5%, 2007년 38.1%에 이어 지난해에는 38.8%를 기록했다. 이에 싼 전셋짒을 찾아 수도권 외곽을 떠도는 ‘전세난민’까지 등장하고 있다. 급증하는 주거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조민이 부동산1번지 리서치 팀장은 “전세는 공짜 이자로 목돈을 조달할 수 있는 집주인과 전세금만 맡기고 거주할 수 있는 세입자의 이해가 일치하면서 생겨난 사금융의 한 형태”라며 “현재는 전셋돈을 받아도 운용해 수익내기 어렵고, 실수요 위주로 돌아가는 부동산 시장에서 시세차익을 기대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전세 제도는 점차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세입자들의 월세에 대한 저항감이 높은데다, 관리 또한 힘들기 때문에 당분간 전ㆍ월세 공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양천구 신정동 o공인 관계자는 “아파트 월세에 대한 세입자들의 거부감이 워낙 크다보니 신학기 이사철이 끝난 뒤는 물건이 잘 나가지 않는다”며 “보증금을 높이는 주택소유자가 생겨나면서 최근 반전세 매물이 줄었다”고 전했다.
반전세의 성행배경은 무엇보다 집주인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저금리 기조가 집값 안정세와 맞물리면서 목돈을 쥐고 있어도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쉽지 않다. 이에 주택보유자들은 월세로 가용수입을 늘리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 집주인의 대부분이 고령층이어서 임대료로 생활비를 충당하려는 경우도 적지않다.
특히 수도권 내 월세전환율(보증금을 월세로 바꿔내는 비율)은 6~12%대로 3%후반~4%초반인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보다 배 가까이 높다. 의식변화도 한몫한다. 아파트 전세시장에도 임대수익이라는 개념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는 것. 분당 이매동 현대공인 관계자는 “과거 집주인들은 ‘아파트 임대차=전세’라고 생각했으나, 최근 오피스텔처럼 월세를 받는 수익형부동산으로 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전셋값 폭등 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임차인의 이해도 맞아떨어졌다. 오른 전세금 마련을 위해 무리하게 대출받느니 일부를 월세로 내겠다는 세입자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준비없는 ‘월세시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주거비용의 급증은 가계 가처분소득을 줄여 사회적 스트레스를 유발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는 내집 마련을 위한 목돈축적의 징검다리”라며 “최대한 지출을 통제해도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에 강제저축의 기능을 담당해왔다”고 설명했다. 월세로의 이행이 세대간 갈등으로 비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매월 최소 수십만원의 세를 내야하는 젊은층들은 사실상 자본축적의 기회를 잃어 평생 홈리스 신세로 살아야 할 공산이 큰 셈이다. 한상삼 주거문화연구소 소장은 “자가소유는 삶의 안정과 직결되기 때문에 보편적 욕구”라며 “일찌감치 내집마련의 기회를 박탈당한 젊은층은 무기력과 패배주의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김민현 기자@kies00>kie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