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큰돈이 오갔는데, 세금을 한 푼도 안 낸다?’
엄청난 증여인데, 세금이 없다. 명백한 조세 체계의 맹점이다.
혼수가 증여의 수단으로 변질된 것은 부유층에선 이미 오래된 일이다. 수억원짜리 미술품이나 수천만원짜리 스포츠센터, 골프 회원권을 들려 보내는 것은 돈 좀 있다 하는 부류에선 자랑거리도 못 된다. 다이아몬드로 뒤덮인 반지와 목걸이는 하고 다니라고 주는 게 아니다. 재산을 한몫 떼어주는 방법의 하나로 이용된다.
증여의 사전적 의미는 물품 따위를 주는 것이다. 법대로라면 모든 증여엔 과세가 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결혼과 관련된 일이라면 예외다. 결혼 예물에는 가격과 상관없이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아무리 큰 금액의 현금과 물건이 오가도, 세금은 없다. 증여세를 내야 할 듯하지만, 실제론 과세되지 않는다.
사실 증여세를 내겠다고 신고하는 사람도 없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는 ‘사회통념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금품’에 대해서는 비과세하도록 하고, 관련 시행령에 ‘혼수용품으로 통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금품’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리지 않게 돼 있다. 그래서 결혼 때 오가는 예물, 예단, 혼수 등은 비과세 대상이다. 물론 친인척과 지인들이 내는 부의금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통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금품’의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아무 물고기도 잡지 못하는 그믈이란 얘기다.
재정부 관계자도 “결혼 선물 등으로 오가는 금품에 대해서는 가격과 상관없이 과세하지 않게 돼 있지만,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관계로 엄청난 액수의 결혼 예물이 오가는 것에 전혀 과세하지 않는 것은 조세 체계의 맹점일 수 있음을 과세 당국도 어느 정도 시인한 셈이다. 과다혼수의 불법증여 변질에대한 법률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란 얘기다.
10억원은 ‘통상 필요’와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그건 평생 아이들 학비 대고 내 집 마련하는 데 허리가 휘는 서민들이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 유리알 지갑으로 세금을 톨톨 털어내는 직장인이라면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통상 필요’에 대해 사람 각자가 느끼는 기준은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예물 가격의 평균치를 내기도 어렵다.
결혼 예물에 대해 10억원은 과세하고, 1억원은 과세하지 않는다면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아예 결혼 선물로 아파트나 상가를 주면 어떻게 될까?
이땐 얘기가 달라진다. 아파트 등 부동산은 과세 대상이 된다. 소유권이 이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사람이 있을까? 돈 줘서 사도록 하면 될 것을.
김형곤 기자/kimh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