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사들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대한해운을 뒤늦게 ‘투기등급’으로 떨어뜨리는 평가를 내놓아 눈총을 받고 있다.
대한해운의 증권신고서를 심사한 금융감독원, 증자 공모를 주관한 증권회사 등 대한해운의 부실 위험을 충분히 알만한 기관들도 이에 대해 전혀 사전경고하지 못한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26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한신정평가는 25일 대한해운의 무보증사채에 대한신용등급을 투자등급인 ‘BBB+’(안정적)에서 투기등급인 ‘D’로 내렸다고 밝혔다. 대한해운의 기업어음에 대해서도 직전 ‘A3+’에서 ‘D’로 하향 조정했다. 한신정평가는 “회사가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한 사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신용평가도 같은 날 대한해운의 회사채와 기업어음 신용등급을 ‘BBB+’(안정적)에서 ‘D’로 내렸다. 한신평은 대한해운이 서울중앙지법에 회생절차 개시 신청, 재산보전처분 신청, 포괄적금리명령 신청을 접수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해운이 한달 전 유상증자에 나설 당시에는 ‘BBB+’라는 등급으로 ‘투자 안심’을 시켰다가 회생절차 신청 사실이 알려지자 뒤늦게 ‘투자 위험’을 알린 셈이다.
이같은 대한해운의 증자 이후 회생 신청과정에서 증권신고서를 수리한 금융감독원이나 증자를 주관하며 실사를 진행한 현대증권, 대우증권도 발뺌만 하고 있다.
금감원은 대한해운이 제출한 증권신고서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한 차례 회사의 자체 정정을 지도한 채 수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체 정정을 지도하며 위험 요인을 충실하게 기재하도록 하긴 했지만 당시에는 대한해운이 회생절차를 신청할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증자 공모를 주관한 증권사들도 실사를 거치면서 이같은 상황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13~14일 대한해운 실권주 공모에서는 125.26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이며 2조원이 넘는 투자자들의 돈이 몰렸다.
그러나 증자 공모 직후인 지난달 20일 이트레이드증권은 대한해운에 대해 단기간 실적 개선이 어려울 전망이라며 목표주가를 5만3000원에서 3만원으로 내렸다.
대한해운은 2009년 4881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데 이어 지난해 3분기까지도 436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대한해운의 경영상황이 급격히 어려워질 수 있다는 예상이 전혀 불가능하지도 않은 가운데 제대로 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불신과 분노가 더욱 커지고 있다.
<최재원 기자 @himis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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