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공포가 엄습하면서 ‘현대판 세뇨리지’의 부작용이 현실화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다. 세뇨리지란 과거 중세 군주(세뇨르)가 재정적자를 메우려고 금화에 불순물을 섞어 유통시킨 데서 유래한 말로, 화폐를 찍으면 교환가치에서 발행비용을 뺀 만큼의 이익이 생기는 것을 뜻한다. 지금 세뇨리지 효과를 볼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기축통화를 찍어내는 미국밖에 없다.
돈을 마구 찍어낸 부작용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국민들의 지갑 속에 있는 화폐의 가치가 떨어진다. 화폐발행을 통한 수입확보는 곧 ‘인플레이션 세금’이 되는 셈이다. 독일 중국 브라질 등이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우리도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등 정부의 움직임이 부산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어 불안심리를 더욱 키우고 있다.
넘쳐나는 글로벌 유동성(돈)이 주식과 원자재, 원유, 곡물 등 위험자산으로 몰려 이들 가격을 밀어올리면서 ‘세뇨리지’의 부작용이 나타나지만 인플레 충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올해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 방향은 ‘5% 성장’에 ‘3% 물가’가 핵심이다. 성장과 물가안정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뜻이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5일 보고서에서 “올 한해 한국경제가 걱정해야 할 건 성장이 아니라 물가”라고 지적했다.
금융시장 불안도 언제 재연될지 모를 일이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5일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이 각국의 경제여건 변화 등에 따라 대규모로 유출입되면서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높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의 물가안정 종합대책이 발표되는 13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새해 첫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신창훈 기자/chuns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