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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단상]추리게임과 귀류법

기사입력 : 201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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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분당판교]추리 보드게임 '다빈치 코드'는 일정한 법칙에 따라 자신의 패를 나열해 놓고, 상대가 가지고 있는 숫자들을 맞히는 게임이다. 숨겨진 숫자를 맞추는 숫자추리게임이므로 다양한 숫자가 나올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숫자는 0 하나 빼고 모조리 자연수다. 그것도 11을 넘지 않는다. 비슷한 추리게임인 '아브라카 왓'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도 많은 숫자타일이 등장하나, 0조차 없는 자연수가 전부다.

모든 보드게임으로 영역을 확장하면 분수나 음수, 소수 등 자연수 외의 것들도 등장하지만, 추리게임에서 이런 복잡한 수들을 만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현실의 범죄수사에서야 어떨지 몰라도, 게임에서 복잡한 수들이 난무하고 복잡한 계산을 필요로 한다면 추리게임으로서의 매력을 느끼기란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런데 자연수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 이런 추리 보드게임의 법칙 속에서도 묘하게 복잡한 수 하나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수는 바로 √2다. 대부분의 추리 보드게임은 √2에 빚진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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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보드게임 '이브라카왓'(왼쪽)과 '다빈치코드'.

◇히파수스의 증명법
고대그리스 시대의 피타고라스 학파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정수와 정수 간의 비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수는 오로지 유리수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믿음은 오래지 않아 깨진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일원이었던 철학자 히파수스가 우연히 유리수가 아닌 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2의 발견이다. 당연히 이는 피타고라스 학파에게 엄청난 추문이었고, 일설에 따르면 히파수스는 자신의 발견 때문에 살해됐다고까지 전해진다.

그렇다면 히파수스는 √2를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나? 그는 각 변의 길이가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를 구하고자 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따르면, 이 길이는 2의 제곱근, 즉 √2다. 문제는 이 √2를 어떠한 정수 비로도 나타낼 수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발견을 확고하게 입증하려 했다.

그는 √2가 유리수일 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일단 √2가 유리수라고 가정했다. 그리고 가정이 참일 때 다른 공리와 모순이 발생함을 보여주었다. 가정이 참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가정은 거짓이며, √2는 유리수가 아니다. 유리수가 아닌 수 무리수의 발견을 입증하는 순간이다.

여기서 히파수스가 사용한 증명방식이 좀 독특하다. 그는 √2가 유리수가 아님을 직접 입증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2가 유리수라고 정한 뒤, 그것이 왜 거짓인지를 보여주는 간접적인 방식을 택했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죽는다는 3단 논법으로 유명한 연역법을 전혀 닮지 않았다. 흰 백조 사례를 모아 백조가 희다는 것을 보여주는 귀납법은 더더욱 아니다.

수학에서는 히파수스 식의 증명법을 귀류법이라 부른다. 귀류법은 어떤 명제의 부정이 다른 공리와 모순이 됨을 보여줌으로써, 그 명제가 성립함을 단정짓는 증명법을 뜻한다.

첫 눈에는 다소 복잡해 보이는 설명이다. '명제가 있고, 명제가 참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고, 그래서 명제는 참이다'와 같이, 증명이라고 할 때 우리가 흔히 갖는 생각과 많이 다르다.

그러나 사실 사람들은 일상에서 귀류법을 꽤 자주 활용한다. '알리바이'가 대표적 사례다. 알리바이가 활용되는 상황을 떠올려보라. 누군가가 용의선상에 오른다. 그러자 그는 알리바이를 주장한다. "난 범인이 아니야. 내겐 알리바이가 있다고" 말이다. 이를 논리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나는 범인이 아니다. ②하지만 내가 범인이라고 가정하자. ③그렇다면 그 가정은 나의 알리바이와 모순이 된다. ④그러므로 가정은 거짓이고, 나는 범인이 아니다.

◇추리 보드게임의 전제, 귀류법
보드게임의 추리는 대부분 귀류법을 전제한다. '다빈치코드'는 상대방의 숨겨진 숫자를 추리해 맞히는 게임이다. 숫자는 타일에 적혀있고, 각 숫자는 흑과 백 타일 별로 1개만 있다. 플레이어들은 이런 숫자타일을 4개 씩 갖고 시작한다. 게임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타일은 추리의 첫 단초다. 숫자는 흑과 백 타일 별로 1개 씩 밖에 없으므로, 자신의 타일에 적힌 숫자는 상대에게 절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여기까지의 추리는 귀류법을 통해 입증될 수 있다. ①내 타일은 상대에게 없다. ②하지만 상대에게도 나와 동일한 타일이 있다고 가정하자. ③그렇다면 그 가정은 모든 타일은 하나씩만 있다는 게임환경과 모순된다. ④그러므로 가정은 거짓이고, 내 타일은 상대에게 없다.

'아브라카왓'도 마찬가지다. 아브라카왓은 자신의 숫자를 추리해 맞히는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볼 수 있는 숫자는 상대방의 숫자뿐으로, 게임에 각 숫자는 숫자만큼 있다. 즉 숫자 7은 게임 내에 총 7개, 숫자 1은 하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추리는 다음과 같은 귀류법을 전제한다. ①다른 플레이어들에게 2가 2개 있다면 나에게 2는 없다. ②하지만 나에게 2가 있다고 가정하자. ③그렇다면 그 가정은 각 숫자가 숫자만큼 있다는 게임환경과 모순된다. ④고로 가정은 거짓이고, 나에게 숫자 2는 없다.

아마 우리는 다른 추리 보드게임에서도 위와 같은 귀류법을 계속해서 발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보드게임에서 구현되는 추리의 고유한 구조를 드러낸다. 먼저 여러 숫자나 항목이 주어진다. 다음으로 그 중 일부가 우리가 알아내야 할 답으로 정해진다. 플레이어는 숫자나 항목의 전체 목록을 알고 있으며, 게임 도중 밝혀진 정보를 제외해 답에 근접한다. 어떻게 이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귀류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이들 추리게임을 할 때는 이렇게 생각해보자. 우리는 감춰진 저 숫자가 7인지 아니면 6인지 직접 볼 수 없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답을 입증할 수 있다. 그것도 2000년도 더 이전에 √2를 갖고 고심했던 한 철학자와 동일한 방식으로 말이다. 귀류법은 새로운 발견을 위해 인류가 마련한, 조금 특이하고 오래된 무기 중 하나다.

이창민 보드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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