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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드게임 단상]①보드게임과 딜레마
보드게임은 오프라인에서 상대방의 눈빛과 숨소리를 느끼며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재미와 전략성을 따지자면 온라인게임이 더 스펙트럼이 넓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러한 '인간적 요소' 때문에 보드게임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와 도형 등 수학적 요소도 커 교육적 측면도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보드게임에 열광해 전문회사에 입사한 보드게이머 이창민의 기고를 통해 보드게임의 매력을 몇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라이너 크니지아는 수학자 출신의 보드게임 작가다. 현재까지 500개 이상의 게임을 개발했다. 1990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니, 2016년에 이르는 지금까지 한 해 평균 약 20개의 게임을 내놓을 정도로 다작한 셈이다. 그러나 내놓는 거의 모든 게임이 평타 이상을 치는 적절한 수준도 놀랍다. 그는 무엇보다도 간단한 규칙으로 '선택'의 괴로움을 주는 노하우를 안다. 특히 이번에 소개할 그의 게임 '인지니어스'와 '로스트시티'는 이 괴로움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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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보드게임 작가 라이너 크니지아의 대표작 인지니어스(왼쪽, 독일어판)와 로스트시티(영어판). (사진: 안혜란 인턴기자)



◇'인지니어스'와 '로스트시티'가 던지는 질문
인지니어스와 로스트시티는 생김새가 꽤 다르지만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두 게임 모두 선택의 '타이밍'이 중요하다. 플레이어들은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큰 이득을 얻지만, 너무 기다리면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언제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 있느냐는 상대의 선택과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

인지니어스를 보자. 이 게임에서 타이밍이 중요한 이유는 점수획득 방식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색이 칠해진 타일을 하나씩 서로 번갈아 게임판에 놓으며 점수를 얻는데, 점수의 크기는 인접한 같은 색의 타일 수에 따라 정해진다. 같은 색의 타일마다 그 색의 점수를 1점 씩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일이 게임판에 많이 깔릴수록 타일 1개를 놓아 얻을 수 있는 점수도 커진다. 반면 게임이 끝나갈수록 타일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들며, 상대의 방해로 적절한 곳에 미처 타일을 놓지 못하는 경우까지 생길 수 있다.

여기에 최종 점수를 결정하는 규칙은 타이밍의 문제를 한층 복잡하게 만든다. 인지니어스에서 점수는 색깔 별로 따로 기록되는데, 최종 점수는 이들 중 가장 낮은 점수다. 그러므로 플레이어들은 게임이 끝나기 전에 가장 낮은 점수의 색 타일을 내려놓을 강력한 동기를 갖게 된다. 그러나 먼저 두기보다 나중에 두기가 점수 획득에는 유리하다. 만약 상대가 나와 같은 색에서 점수가 낮다면, 누가 해당 색의 타일을 먼저 놓을 것인가를 두고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 게임은 묻는다. 언제 기다림을 끝낼 것인가? 이는 상대가 언제까지 나의 기다림을 기다려 줄 것인가에 달려 있다. 상대는 어느 시점에 좋은 자리를 자신의 타일로 막을 것인가?

로스트시티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최적의 카드패를 구성하는 문제는 둘째치고,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카드 게임도 인지니어스와 마찬가지로 서로 손에 있는 카드를 1장 씩 내려놓으며 게임을 진행하는데, 카드에 적힌 각각의 숫자가 점수다. 모든 숫자카드는 색깔 별로 1장만 있으므로, 기다릴수록 나는 상대가 사용한 카드를 보며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뿐 아니다. 손에 큰 숫자카드를 들고 있으면, 상대가 해당 색의 작은 숫자를 점수로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진다. 로스트시티에서 색깔 별 시작 점수는 어떤 색의 카드를 점수로 내려놓았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점수로 내려놓은 색깔 카드가 1장이라도 있다면, 그 색의 시작 점수는 0점이 아니라 -20점이다. 따라서 손의 카드로 -20점을 넘길 충분한 점수를 얻을 수 없는 상대는 큰 손해를 입는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는 역시 무한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게임에는 끝이 있으며, 그 끝은 플레이어들에 의해 결정된다. 다시 질문이 주어진다. 언제 기다림을 끝낼 것인가?

◇치킨게임을 닮은 '기다림'의 구조
이러한 타이밍 다툼은 치킨게임을 떠올리게 한다. 치킨게임은 본래 1950년대 미국 갱 집단 사이에서 유행한 놀이다. 일종의 담력 시험으로, 좁은 도로에서 서로 자동차를 마주 보고 달리게 하다가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겁쟁이(Chicken)가 된다.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면 죽음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핸들을 꺾든 꺾지 않든 어딘가 맘에 들지 않는다. 크니지아의 게임에서 선택이 괴로운 이유다.

뿐만 아니다. 치킨게임을 수학적으로 고찰하면 더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아래 표를 보자. 핸들을 꺾는 것이 회피, 꺾지 않고 계속 달리면 돌진이다. 음수와 양수는 각자의 손익을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5 10 같은 구체적 수치를 적어놓았지만, 절대적 크기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각 숫자 간 상대적 크기 차이를 주목해야 한다.

치킨게임에서는 상대의 의도가 매우 중요하다. 위 표는 이를 수학적으로 명료하게 보여준다. 상대가 회피한다고 가정하면, 나는 돌진하는 것이 이득이다. 회피할 때보다 5의 이득이 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상대가 돌진한다고 가정하면 나는 반드시 회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돌진할 때의 손해가 -10으로 회피할 때의 -5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치킨게임에서는 항상 상대의 의도에 따라 나의 합리적 선택이 달라진다. 이것은 인지니어스와 로스트시티에서 우리가 보았던 기다림의 특징이기도 하다. 내가 언제까지 기다릴지는 상대의 선택과 의도에 달렸다.

인지니어스와 로스트시티는 우리에게 '언제까지 기다릴 것인가?'를 묻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언제 기다림을 중단할지가 상대의 의도에 달렸다는 점에서, 치킨게임을 닮았다. 물론 두 게임에서 이득의 상대적 크기는 변할 수 있다. 모두 기다리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다면 현 상황의 지속이 누구에게 유리하게 될지를 판단해 기회비용을 재평가해야 한다. 즉 실제 인지니어스와 로스트시티 게임에서 둘의 기다림은 치킨게임에서와 같이 확고한 둘 모두의 손익 0이 아니다. 치킨게임과 달리 둘은 동시에 선택하지도 않으며, 치킨게임과 달리 실제 게임에서는 다양한 외부 요소가 손익 계산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이러한 불확실성은 이미 높아진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기본적인 치킨게임 상황에 더해, 플레이어들은 불확실성을 나름의 방식으로 평가하고 계산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상대의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 불확실성과 괴로움의 원천이 다른 플레이어에게 있는 것이다. 상대를 의식하게 만드는 선택의 괴로움. 이는 크니지아가 인지니어스와 로스트시티에서 구조화한 기다림의 목표는 아닐까.

이창민 보드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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