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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교별의 초보엄마]⑩이유식에 대한 단상
[헤럴드분당판교]주변의 아기들을 보면 다 자연스럽게 큰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자마자 모유를 먹고 그 다음에는 분유 , 이유식, 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생각에 아기의 식사에 대해서 쉽게 생각한 것이다. 특히 분유 수유를 시작했을 때 벌컥벌컥 잘 마셔주는 우리 아기를 보며 앞으로도 별 어려움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처음 이유식을 시작했을 때의 당혹스러움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으로 아기에게 무언가를 먹인다는 설레임에 이쁜 식판에 이쁜 그릇으로 이유식을 담아 핸드폰 사진을 찍고 아기를 식탁에 앉혔다. 두근 반 세근 반 설레임에 아~ 하며 아기에게 입 벌리기를 유도하면서 스푼을 입에 넣으려 하자마자 입을 꼭 다물고 음식을 먹기 싫어 혀를 내밀던 아이의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이유식의 세계와는 너무 달랐다.

턱받이를 하고 숟가락을 아기의 입에 갖다 대면 웃으며 아~ 하고 작은 입을 별려주며 오물오물 먹는 나의 상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답답하다며 턱받이를 던지고, 숟가락을 빼앗아 음식을 휘저으며 온 식탁을 이유식 범벅으로 만들어 놓는 아기의 모습에 한동안 입을 벌리고 쳐다볼 뿐이었다.

이미지중앙

이후 나는 삼시세끼 식사시간이 두려워졌다. 매일 밤 마트에 가서 싱싱해 보일 것 같은 야채와 이유식용 고기를 사 이유식을 만들고, 아기 앞에서 내가 평생 해보지 못한 개인기로 동물 흉내도 내보고 인형극도 해보며 달래도 보고 협박아닌 협박도 해봤지만 아기는 입을 벌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아기의 영양을 위해 갖은 야채와 고기를 넣어서 끓인 죽은 남편과 나의 몫이 되었다. 육아 선배인 언니의 도움을 받아 레시피를 받아 만들어 보기도 했지만 냉동실에 쌓여만 갈 뿐이었다.

숟가락이 이상해서 안 먹나 싶어 종류별로 숟가락도 구매해보고, 블로그에서 좋다는 시판 이유식 등을 종류별로 주문도 해보았다. 하루는 너무 잘 먹어서 만세를 부르게 하다가도 다음날은 또 입을 굳게 다무는 아이를 보며 애태우는 날이 이어졌다.

자주 찾는 병원의 원장 선생님은 "12개월부터 분유를 끊고 조금씩 식사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나의 마음은 조급해지기만 해서 아기에게 이유식 먹이기를 반강요하다시피 밀어붙였다. 굶기면 먹는다는 어떤 엄마의 말에 굶겨도 봤지만 아기는 통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분유만을 찾는 아기에게 잘 먹는 다른 아기들과 비교하며 원망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유아서적에는 돌이 지나면 모유나 분유를 끊고 이유식을 시작하라고 적혀 있었고 나는 책대로 안 따라 주는 아기에게 탓을 돌렸다.

마침내 퇴근하는 남편에게 "주변 아기들은 이렇게 저렇게 잘 먹는데..."하며 아기에 대한 원망을 털어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남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아기도 감정이란 게 조금씩 생길 텐데 갑자기 가장 좋아하던 음식을 하루아침에 바꾸고 강요하면 힘들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아기를 다른 누군가와 벌써부터 비교하는 걸 아기가 안다면 얼마나 슬플까"

순간 아이에게 원망 섞인 말과 무조건 아이 탓으로 돌렸던 나의 하루를 돌이켜 보게 되었다. 육아책이나 미디어 등을 통한 과정에만 맞추려고 급급했던 나 자신이 슬퍼져 눈물이 나왔다.

다음 날부터는 분유와 이유식을 혼합해서 먹이기 시작했다. 분유를 좋아하는 아이의 입맛에 맞춰 이유식보다는 분유의 양을 늘리다가 점차 줄여나갔다. 간을 전혀 하지 말라는 책 가이드와는 달리 나는 소금도 조금씩 넣고 올리고당으로 단맛을 주기도 했다. 그러자 아기는 조금씩 입을 벌리기 시작했고 17개월이 된 지금은 조금씩 엄마, 아빠와 함께 숟가락을 쥐며 같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아플 때나 입맛이 없을 경우에는 애태울 만큼 먹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난 조급해 하지 않으려 한다. 나만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주변 친구들 중 모유 수유 하는 친구들은 모유를 끊고 이유식을 먹이기 위해 나만큼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아기에게는 누구보다 소중했던 엄마의 가슴에 쓴 약도 발라보고 곰돌이 그림도 그려 넣으며 아기와 힘든 이별을 하는 걸 지켜보는 엄마들도 있었다. 분유뿐 아니라 이유식도 안 먹으려고 해 힘든 시간을 보낸 엄마들도 있었고.

SNS를 통해 세계 각국에서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일상생활을 보던 중 작자 미상의 시를 하나 읽게 되었다. 이 시를 읽으며, 잘 먹는 아기들과 비교하면서 아기에게 원망했던 나 자신을 오랜 시간 반성하게 됐다.

A child is like a butterfly in the wind
어린 아이는 바람 속에서 날고 있는 나비와 같다

Some can fly higher than others

어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 보다 높이 날 수 있다

But each one flies the best it can
그러나 각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난다

Why compare one against the other?

왜 서로를 비교하려고 하는가?

Each one is different
하나하나가 다르다

Each one is special
하나하나가 특별하다

Each one is beautiful
하나하나가 아름답다


박제스민 violethu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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