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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교별의 초보엄마]⑨나의 제자, 내 아기의 선생님
[헤럴드분당판교]어린 시절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면 선생님 역으로 나왔던 로빈 윌리엄스가 학생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Carpe diem!"

'카르페 디엠'은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 한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명언은 영어로 번역하면 ‘Seize the day’, 한글 번역으로는 ‘현재를 잡아라’다. 다시 말해 ‘이 순간을 즐겨라’라는 뜻이다. 오랜 기간 교육직에 종사하면서 이 말은 나의 신념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나에게는 최고의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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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생활과 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생활은 매우 달랐다. 수업은 가르치는 만큼 결과가 보이지만 이유 없이 우는 아기와의 의사소통은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졌다.

그런 내게 용기를 주었던 친구 셋이 오늘 찾아왔다. 나에게 그들은 처음부터 친구들은 아니었다. 초등학생 또는 중학생 시절부터 나에게 영어를 배운 제자들이다. 지금은 성인이 되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자주 나와 나의 아이를 보러 방문을 해준다.

성인이 된 아이들은 하이힐에 화장을 하고 어른인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나는 아직도 그들이 초·중학교 시절부터 나와 함께 웃고 울고 떠들던 아이들 같아 볼 때마다 웃음이 났다.

아이들은 학생시절, 나를 보며 보이지 않던 미래를 조금씩 볼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퇴근시간을 늦추며 그들과 분식집에서 김밥과 떡볶이를 먹으며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월급날 피자를 함께 나눠 먹기도 하며 방학 때는 영화를 보기도 했다.

동년배 친구들은 학원 강사인 내가 아이들과 어울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걸 이해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는 이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무엇이든 열심히 할 수 있게 해주는 발판이 되고 싶었다.

아이들은 미래를 불안해했고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망원경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는 말을 참 많이도 했었다. 아이들에게 일직선인 삶보다는 조금은 삐딱해도 다양한 삶의 경험을 가르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난 후 나의 제자들은 성인이 되어 바쁘게 살고 있다. 배낭여행을 통해 세상을 보고, 미래를 위해 여러 대회에도 참가해 실력을 쌓으며, 경력을 쌓기 위해 12시간씩 일을 하기도 한다.

이제 이들은 나를 위해 바쁜 시간을 내어주며 나의 엄마라는 새 직업에 용기를 북돋아 준다. 임신 이후 글로만 육아를 배운 무지한 나에게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주었던 힘을 두 배로 돌려준다. 아이가 웃을 때까지 옆에서 놀아주고 아기의 조그만 키에 맞춰서 따라다니며 아기가 좋아할 만한 걸 찾아다 주고 무언가를 알려주고 싶어 한다. 그들은 하루 종일 나와 나의 아이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 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스크래블'이라는 영어단어 퀴즈를 나보다 잘하고 싶어서 밤새 공부했었던 애림이는 매년 장학금을 받는 훌륭한 대학생으로 성장해주었다. 공부보다는 운동에 소질을 보였지만 학원이 좋아서 빠지지 않고 열심히 왔던 재완이는 멋진 운동선수가 되었다.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다나는 멋진 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해 열심히 경력을 쌓고 있다.

지금 그들은 새로운 미래와 새로운 직업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고, 한편으로는 엄마라는 새로운 직업을 힘들어하는 내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멋진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잊고 있었던 이 말을 떠올리게 했다.

‘이 순간을 즐겨라.’

나는 왜 이 말을 그동안 잊고 살았을까? 길을 걷다 보면 지금 나의 아이보다 더 어린 아기들이 엄마에게 안겨 가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그 아기들을 쳐다보며 미소 지으며 한편으로는 후회를 해 본다. 아, 이때 왜 더 많이 안아주지 못했을까? 왜 저렇게 아름다웠던 순간을 힘들게만 느꼈을까? 출산 후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나에게 무조건 의지해야만 아기가 버겁게 느껴져 눈물을 흘린 적도 종종 있었다.

제자들을 통해 나는 또 한 번 힘을 내본다. 그들은 더 이상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아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세상을 걸어 나가는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자 나의 아기에겐 좋은 선생님이다.

박제스민 violethu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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