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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드게임의 효과]⑦의사소통
[헤럴드분당판교=김미라 교육부장]현대처럼 지식이 분화되어 고도로 발전한 시대에는 지식과 지식 사이,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를 연결해줄 수 있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다들 소통을 화두로 내세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의사소통은 외국어 번역에 비유되기도 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소통이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이토록 쉽지 않은 의사소통을 '놀이'로서 증진시킬 방법은 없을까.

보드게임이 작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할 보드게임 두 가지는 의사소통과 관계가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모두 그림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림이 어휘 학습에서 매우 효과적 수단임을 고려하면, 교육적으로 유용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어휘력은 단순히 단어의 뜻을 달달 외는 것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어휘를 익히는 실제 과정과도 동떨어져 있다. 어휘는 생활의 맥락 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학습된다. 그림은 이 구체적 맥락을 언어 외의 수단으로 전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반복해서 동일한 맥락을 적은 비용으로 전달하는 경제성까지 갖췄다.

◇다른 사람의 관점이나 생각을 엿보다_딕싯
딕싯은 라틴어로 '말하다'라는 뜻이다. 게임의 제목부터 언어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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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된 내용물은 84장의 그림카드다. 의미를 쉽게 짐작할 수 있도록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은 아니다. 이는 의도된 것인데, 각 그림이 충분히 다의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게 그려져야 이 게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게임의 규칙만큼이나 카드의 일러스트가 중요하다.

게임은 돌아가면서 이야기 퀴즈를 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퀴즈는 객관식으로, 보기는 각각의 그림카드다. 퀴즈문제는 "주어진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그림을 고르시오"다. 각자 그림카드를 6장씩 나눠가진 다음, 첫 번째 이야기꾼을 정한다. 이야기꾼은 손에서 카드 1장을 골라 그림을 설명한다. 이 때 그림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자기 손에서 이야기에 가장 가까운 그림 카드를 골라 이야기꾼에게 준다. 이 그림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여주지 않는다.

이제 이야기꾼은 자신이 고른 카드와 다른 사람이 준 카드를 모두 잘 섞어서 공개한다. 공개된 그림카드가 퀴즈의 보기 역할을 한다. 이야기꾼을 제외한 사람들은 주어진 그림카드 중에서 이야기꾼이 고른 카드가 무엇이었는지 맞혀야 한다. 답을 맞히기란 그리 쉽지 않다. 모든 그림이 하나의 의미를 특정할 수 없도록 모호하고 몽환적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그림을 보고도 떠올리는 이야기는 천차만별이다.

사실 이 게임의 핵심은 답을 잘 맞히는 데 있지 않다. 점수를 매기는 규칙이 있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아예 무시하고 진행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알려졌다. 딕싯은 무엇보다도 스토리텔링 게임이다. 자유롭게 이야기를 건네고 그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점수 자체보다 중요하다. 그림과 이야기를 비교하며 다른 사람의 관점이나 생각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승패에 관계없이 모두 딕싯을 즐길 수 있는 이유다.

딕싯을 하며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관찰력과 추상적 사고력, 상상력과 표현력을 기르게 된다. 이야기를 만들기 전에 그림의 내용을 꼼꼼히 살피려면 관찰력이,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어떤 의미를 도출하려면 추상적 사고와 상상력이 필요하다. 생각한 의미를 다른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말로 구현할 때는 표현력이 개입된다. 어린이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어휘를 친구에게서 배울 수 있고, 교육자는 어린이의 어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단어와 그림에 표현된 '기호(sign)'를 파악하다_텔레스트레이션
텔레스트레이션은 가족오락관의 '방과 방 사이'를 연상케 하는 게임이다. 주어진 단어를 그림으로 잘 설명해서, 마지막 사람까지 단어가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게임은 모두에게 스케치북과 펜을 하나씩 나눠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케치북의 표지를 넘겨 정답 쓰는 곳에 제시어를 적는다. 제시어는 100장의 단어카드에서 무작위로 정한다. 카드는 양면으로, 면마다 6개의 단어가 적혀있다. 1200개의 단어가 있는 셈이다. 육면체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숫자에 해당하는 단어가 제시어가 된다.

제시어가 정해지면 스케치북을 한 페이지 넘기고 그림을 그린다. 단어를 최대한 그림으로 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 그렸으면 페이지를 넘겨서 왼쪽 사람에게 준다. 모두 옆 사람으로부터 스케치북을 받으면, 바로 앞 페이지를 펼쳐 그림을 확인한다. 이제 그림이 어떤 단어를 표현한 것인지 맞힐 차례다. 각자 생각한 단어를 스케치북에 쓴다. 다 쓰면 또 페이지를 한 장 넘기고 왼쪽 사람에게 준다. 스케치북을 받은 사람은 다시 앞 페이지의 단어를 보고 그림을 그린다. 이렇게 그림과 단어를 번갈아 적다가 모든 스케치북이 한 바퀴를 돌면 멈춘다.

이제 정답을 확인할 시간이다. 텔레스트레이션의 백미는 이 정답확인 시간에 있다. 같은 단어라도 생각이 다 다르고, 쉽게 따라가지 못할 독창적 해석으로 큰 웃음을 주는 사람이 항상 나오기 때문이다. "왜 이 단어를 이렇게 그렸니?" "왜 이 그림을 보고도 이 단어인지 몰랐니?"라며 한바탕 웃게 마련이다.

얼핏 텔레스트레이션은 그림 그리기가 전부인 게임으로 보인다. 실은 의사소통과 관련된가지 능력이 그림 실력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게임이다. 첫째는 단어의 핵심 의미를 잘 파악하기, 둘째는 주어진 그림에서 단어 유추하기다.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해서 실제와 똑같이 그려야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제시어 자체가 '월 스트리트' '리드 싱어'처럼, 사진을 찍어 준다고 해도 전달하기 힘든 단어가 많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기호(sign)'를 파악해서 적절히 표현하는 능력이다. 그림을 보고 단어를 맞혀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림에 표현된 '기호'를 읽고 이로부터 단어를 유추해내야 한다.

텔레스트레이션도 딕싯처럼 점수계산 규칙이 있지만, 게임을 하다 보면 곧 점수는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두 웃느라 정신이 없어서 계산하는 걸 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b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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