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해제’와 ‘해지’의 차이다. 해제는 계약체결 후 일정 시점까지 ‘계약 자체를 없었던 일로 하고 모든 것을 원래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말한다. 해지는 그 시점까지의 계약은 유효했던 것으로 보고 ‘그 시점 이후의 장래를 향해서 계약관계를 없애자는 것’이다. 모든 계약은 해제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모든 계약이 해지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해지는 대리점, 하도급, 임대차 등 ‘계속적 거래행위’만 가능하다.
둘째, ‘해제 가능성’의 중요성이다. 건물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하루 아침에 그 가격이 폭등하거나 폭락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때 해제는 아무나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법으로 정해진 요건이 충족되야 ‘법정해제’를 할 수 있다. 계약서에 별도로 정해 놓은 조건이 충족되면 ‘약정해제’를 할 수 있다. 이와 상관없이 계약 당사자들이 동의함으로써 ‘합의해제(해제계약)’를 할 수도 있다.
셋째, '채무불이행'에 관련된 사항이다. 법정해제는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하며, 법정해제가 성립되면 양쪽은 모든 것을 원상 회복시켜야 한다. 그리고 채무불이행을 저지른 쪽은 계약해제 때문에 발생한 상대방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채무불이행의 대표적인 것이 한쪽의 ‘이행지체’와 ‘불완전이행’이다. 이 두 경우는 상대방에게 이행을 독촉하거나 상대방의 추완(완전한 이행)을 촉구하는 ‘최고’ 절차를 밟은 뒤 법정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밖에 이행이 불가능하게 돼 버린 ‘이행불능’과 상대방이 계약 이행을 하지 않겠다고 명백하게 선언한 ‘이행거절’도 채무불이행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두 경우에는 최고 없이 계약을 법정해제할 수 있다. 굳이 독촉해도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매매계약 직후 건물 가격이 폭등하거나 폭락할 경우 매도자나 매수자는 법정해제 요건부터 살펴보게 된다. 매수자가 잔금지급을 지체한다면 매도자는 그 이행을 최고한 뒤 매매계약을 법정해제할 수 있다.
넷째, 계약 무산의 가장 간편한 방법인 ‘해약금’을 통한 해제다. 우리는 보통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금’이라는 명목의 돈을 주고 받는다. 계약금은 계약사실을 확인시키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어느 한쪽이 간편하게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해약금의 역할도 한다. 해약금을 받은 쪽은 그 두 배를 상대방에게 지불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해약금을 건넨 쪽은 해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다. 해약금을 통한 해제는 ‘상대방이 이행에 착수하기 전’에만 가능하다. 예를 들어, 건물 매도자가 매매계약을 해약금 해제하는 것은 매수자가 중도금을 납입하기 전에만 가능하다. 바로 중도금 납입이 ‘이행의 착수’라는 법률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에 든 건물을 매수한 사람은 약속된 중도금 납입기일이 되기 한참 전이라도 중도금을 매도자의 계좌로 입금해야 한다. 이 경우 매도자의 해약금 해제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