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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교별의 초보엄마]③어린이 벼룩시장
[헤럴드분당판교]지난 528일, 성남시에서 주최하는 어린이 벼룩시장이 열렸다.

아이들 스스로 상인이 되어 집에서 더 이상 손이 가지 않는 장난감이나 옷들을 사고팔며 경제원리를 배우는 취지로 열렸다. 아이를 가진 성남시민이라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고 당첨 시 집에 간직하고 있던 여러 물건들을 판매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지인이 신청한 게 채택되어 나도 난생 처음 거리의 상인이 되어 물건을 팔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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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8일 성남시청에서 열린 어린이 벼룩시장.(사진: 박제스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3시간만 열리는 장터여서 오전 내내 아기 옷장과 집 이곳저곳을 뒤지며 물건을 캐리어에 담았다. 1년간 아기를 키우면서 별로 안샀겠지 싶었는데 여기저기서 꺼내어 담아보니 대형캐리어에 가득 담아도 넘칠 정도였다. 임신 후 살이 부풀어도 입고 싶었던 옷은 왜 이리 많았는지... 산처럼 쌓인 물건들을 차곡차곡 담아 집을 나섰다.

10분 거리에 있는 성남시청에 일찍 나섰다 싶었지만 주차장은 이미 차들로 가득 차 들어갈 수 없었다. 인근 도로에도 한줄 가득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5월인데도 날씨는 한여름 못지 않게 뜨거웠고 벼룩시장 열기 또한 후끈했다. 성남시에 사는 주민 모두가 나온 것처럼 시청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번호표를 받아 지정된 천막에 돗자리를 깔고 여러 물건들을 차곡차곡 이쁘게 정리해 팔기 시작했고,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줄지어 구경했다. 시청에서 상인들을 위해 햇빛 가리개용 천막을 제공했지만 뜨거운 날씨는 물건을 파는 어린이나 부모 얼굴에 땀과 붉게 그을린 피부를 선사했다.

◇대부분 5,000원 이하로 사고팔아...물건마다 스며든 사연과 추억은 덤
나 역시 지인과 함께 돗자리를 펴고 캐리어에 담겨진 아기의 지나간 추억들을 꺼내 보았다. 태어나서 처음 보았을 모빌, 백일 때 입었던 턱시도, 이제는 작아져 버린 우주복, 수영복 등 물건을 볼 때마다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며 절로 미소가 새어나왔다.

여기저기서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모, 여기여, 제가 아꼈던 인형이에요! 제가 처음 공부했던 영어책이에요!”

아이를 대신해 상인으로 나선 부모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이거 우리 아기가 한 번밖에 안 입었어요! 더는 못 깎아드려요!”

이제 막 임신을 한 임산부나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엄마들은 나의 물건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얼마에요?” 성남시청에서 판매자에게 요구한 조건상 무조건 1만원 이하의 금액으로 판매를 해야 했으므로 가지고 온 물건들을 5,000원에서 8,000원 사이로 책정하고 대답을 했다. "5,000원입니다." 대답 하는 순간 “3,000원에 해주시면 안 되여?”

순간 너무나 당황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곳에서 파는 물건들은 1만원 이하도 아닌 거의 5,000원 이내로 거래되고 있었다. 일단 파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구입했던 금액은 무시한 채 정말 갖고 싶어 하는 구매자들에게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이렇게 팔다 보니 지갑에는 천원 지폐들이 쌓이기 시작했고, 나도 물건이 사고 싶어져서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 접한 벼룩시장은 나에게 또 다른 신기한 경험이었다. 물건을 살 때마다 그 물건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고, 내 아이에게 맞는 책과 장난감 등을 천원짜리 한 장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 놀라웠던 일 중 하나는 아이 옷이나 장난감이 생각보다 너무 고가였다는 점이다. 더욱이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육아 프로그램이 많아져 협찬한 옷이나 장난감들이 엄마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유행이 되어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나는 안 그래야지, 싶다가도 우리 아이도 이걸 입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지갑을 쉽게 열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이번 벼룩시장을 통해 작은 감동을 얻었다. 비록 여기저기 때가 묻기도 하고 판매자들에겐 무용지물이 된 물건일 수도 있지만, 몇 천원에 거래되는 물건들이 누군가에겐 큰 기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아이가 백일에 입었던 턱시도를 사간 한 어머니는 이런 말을 했다. “감사합니다. 한 번 입고 안 입게 될거라 망설였는데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뭔가 뿌듯하고 더위로 익은 얼굴에 환한 빛이 감도는 듯했다.

영화 토이스토리3는 버려진 다락방 인형들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대사가 나온다. 주인공 앤디가 어른이 되어 자기가 아꼈던 인형 우디를 이웃집 소녀에게 선물로 주며,

Will be there for you no matter what. 항상 너의 곁에 있어줄 거야
You think you can take of him for me 우디를 잘 지켜줄거지

벼룩시장에서 산 기차 장난감을 들고 활짝 웃을 아기를 생각하며 다음 기회에도 참석하리라는 다짐을 했다.

박제스민 violethu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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