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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능 단상]잘 이겨내라, 청춘들이여!
[헤럴드분당판교]지난 12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난 후 가채점을 끝낸 학생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러한 가운데 이들과 접점에 있는 분당의 모 학원장이 수능국어 가채점 이후 분위기와 단상을 '헤럴드분당판교'에 기고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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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수능 당일 오후, 만둣국을 먹고 싶어 학원 근처 식당에 갔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만둣국이 매우 맛있어 보였다. 주문한 음식이 나온 후 갑자기 지난 6, 9, 10월 모의고사 때 국어과목 모두 만점 1등급을 받은 분당구 S고교 학생의 가채점 결과가 궁금해 전화를 했다. 한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한 입 두 입 만두를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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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몇점?” “91점이요잘못 들었나 싶었다. “몇점..?” “91점이라고요

순간 멍했졌다. 이번 수능국어에서 91점이면 2등급이 예상되기에 재차 물었다. 같은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다른 과목은 모두 1등급. 서울대를 꿈꾸던 청춘, 나를 믿고 예비고1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강의가 좋다며 3년을 다닌 청춘인데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평소 점수가 잘 나오던 학생이 막판에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지만, 해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은 무거워진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음식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날따라 비바람이 쳤다. 우산도 없이 오랜만에 산성비를 맞으며 학원까지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뗄 때마다 이 직업에 회의가 느껴졌다. 자책감이 밀려오고 눈가엔 이슬이 핑 맺혔다. '녀석들 마음이 얼마나 안 좋을까?'

학원에 도착하자마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논술 준비해주세요. 수능국어 만점 받았습니다” 분당구 H고교 남학생의 목소리였다. 지난 3월 모의고사에서 5등급이던 학생이다. 찬찬히 오르더니 급기야 예상하지 못한 성적을 거둔 것이다. 또 다른 학생의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98점, 1등급 받았네요. 감사합니다.” 지난 3월 모의고사 등급이 4등급이었던 학생이다. 행복감이 밀려왔다. 직업에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이 느낌을 충분히 즐기기도 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정말 간사하구나. 잠시 전만 해도 직업에 회의를 느꼈는데 한 시간도 채 안되어 직업에 보람을 느끼다니. 연잣돌을 매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싫어 성적이 저조한 학생보다 성적이 좋은 학생의 소식만을 머릿속에 애써 되뇌이는 나는,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계속 함께 아파해야 하는가?'

수험생 모두에게 미련과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난 이번 대학수학능력시험. 어떤 청춘에겐 짜릿한 승자의 쾌감을 맛보게 했을 수도, 어떤 청춘에겐 성적상실에서 오는 허탈감으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마저 갖게 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이들에게 오직 이 한 마디만 들려주고 싶다. 그대들이 걸어 온 학업의 길은 인생을 빛나게 해줄 지극히 작은 하나의 요인일 뿐임을!

잘 이겨내라, 청춘이여. 잘 이겨내시라, 청춘들이여.

강영호 강영호국어·논술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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