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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오현 칼럼]읽기에서 쓰기까지

기사입력 : 201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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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인가를 생산한다. 농부는 농산물을, 어부는 수산물을 생산하고, 공업을 통해 물품을, 상업을 통해 서비스를 생산한다. 이런 직업상의 생산이 현대문명을 근간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인간은 언어활동을 통해서도 생산한다. 말과 글을 생산한다.

언어적 생산 활동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처세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조건을 말한다. 몸가짐[身]이 건강해야 하고, 말[言]로써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하며, 글[書]로써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표현할 능력을 가져야 하고, 판단력[判]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판단하는 요소 중 중요한 두 가지[말, 글]가 언어활동에 의한 생산임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입시와 취업에서 말과 글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심지어 장관 등 고위직 임명에도 그가 한 말과 글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직업상의 생산을 통해 생활을 유지하지만, 언어적 생산을 통해 타인과의 소통능력을 키워가며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언어적 생산활동이 사람의 장래에 얼마나 중요한 지 꼭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옛말이 아니라도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시대이다.

언어적 생산도 경제활동과 마찬가지로 투입이 있어야 한다. 말과 글이라는 생산활동은 듣기와 읽기라는 투입요소를 통해 이루어진다. 투입요소가 풍부해야 생산이 풍성하다는 것은 경제활동이나 언어활동 모두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듣기와 읽기 중에서 듣기는 시간상으로, 물리적 공간상으로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이 아닌 인간의 지적활동 상당 부분은 훨씬 제약이 적은 읽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가 읽는 대상은 모두 타인의 생산물인 글이다. 인간의 지적 활동 시스템은 타인의 언어적 산물인 글을 읽고 다시 글을 산출하는 순환구조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읽기에서 쓰기까지의 과정은 지성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필수적이다. 읽기와 쓰기를 정복하지 못하면 결코 지성의 전당에 들어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읽기(reading)는 순환과정(circular processing)
미국 아리조나 대학의 명예교수이고, 총체적 언어이론(the whole language theory)을 창시한 켄 굿맨은 읽기(reading)를 심리언어학적 추측 게임(psycholinguistic guessing game)이라고 보았다. 읽기라는 게임의 대상이 문자나 단어가 아니라 글을 이해하고 의미를 구축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독자들은 글을 읽을 때 틀린 단서(miscues)를 사용하며, 이것들을 교정하고 보완하는 것을 통해 의미를 이해하고 다음에 무슨 내용이 나올지 예측한다고 말했다. 굿맨 교수는 우리가 글을 읽을 때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고의 작용과 반작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바르게 읽기, 틀리지 않게 읽기만을 강조하는 읽기교육은 맹점을 지니고 있다.

칸트는순수이성비판에서 "새로운 정보나 새로운 개념, 새로운 사상은 각 개인이 이미 알고 있는 어떤 내용과 관계가 있을 때만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각 개인은 특수한 개념과 관계시킬 수 있는 일반적인 개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칸트의 철학적 개념이 우리가 읽기에 적용하는 선험지식이론(schema theory)이다. 즉 읽기는 독자의 언어지식에 관한 내용 이상의 것으로, 단어와 문장 그리고 문맥에 대한 이해는 물론 독자의 세계관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읽기는 독자가 자신이 이미 보유한 지식을 활용하여 저자가 제시하는 내용을 자신의 새로운 지식으로 넓혀 나가는 구성과정이다. 만일 독자의 경험지식이 글의 새로운 지식을 이해하는 데 아주 부족하거나 실패한다면 그 새로운 지식의 정보는 이해될 수 없다.

외국어로서 읽기는 학습자의 능력에 따라 읽기전략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초급자나 중급자 수준에서는 상향식 모형(bottom-up processing)이 적합하다. 상향식 모형은 작은 정보 단위에서 큰 정보 단위 순서로 이해한다. 음성학적인 소리로 낭독하며 단어, , 문장, 단락, 전체 글의 순서로 파악한다. 이는 텍스트 중심의 이해이며 학습자가 주어진 언어 정보를 조합하여 이해하는 수동적인 학습이다. 반면 하향식 모형(top-down processing)에서는 학습자의 사전지식과 배경지식으로부터 글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이해한다. 이는 학습자의 상급 지적 수준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외국어 교육에서는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 두 가지 모형을 결합한 상호적 모형(interactive models)에서는 정보처리를 하향식으로 학습자 중심으로 하지만, 단어, 표현, 문맥, 주제를 중심으로 학습자가 추측, 수정, 확인, 설명할 수 있도록 상향식 모형을 취하기도 한다. 상호적 모형은 읽기의 이해 과정을 일직선인 선형이 아니라 순환적 과정(circular processing)으로 본다.

읽기의 결과로서 쓰기(writing)
미국에서 글쓰기의 바이블로 여겨지는 Elements of Style의 마지막 단원은스타일에 대한 접근’(An Approach to Style)이다. 이 책의 저자는 스타일을 글쓴이의 영혼, 습관, 능력 그리고 편향(bias)이라고 설명하면서 스타일이 있는 글을 쓰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스타일이 있는 수준의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특히 외국어인 영어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춘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스타일이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스타일이 있는 좋은 글을 읽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학생들이 시험 문제에 나오는 출처도 알 수 없는 맥 빠진 지문만을 학습하는 것은 정말 큰 문제라고 본다. 좋은 글을 읽지 않고서는 좋은 글을 생산할 수 없다. 무엇보다 훌륭한 고전 작가들의 글을 읽고 그 스타일을 이해하며 배운다면 좋은 글쓰기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따라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읽기 이전 단계로서 단어나 문법, 선험지식 등이 필요하다면 읽은 후의 단계로서 글쓰기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외국어로서 영어 읽기는 사후 단계로서 읽은 내용에 대한 정리, 강화과정이 필요하다. 읽은 글의 어휘와 표현에 대한 확장연습을 하고, 다른 매체나 수단을 통해서 동일한 글이나 관련 글을 읽어 지식을 심화해야 한다. 읽은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글의 내용을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연결하고, 학습한 어휘와 표현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해야 한다. 이런 목적을 위해 글의 내용을 토론하고, 논리적이면서도 비판적인 글을 완성함으로써 언어적 생산활동을 마무리짓는 것이 성공적인 영어 학습이다.

창의적이고 스타일이 있는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다면 그 중간과정으로바꾸어 쓰기(paraphrasing)’를 권한다. 외국어 학습에서 읽기와 쓰기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바꾸어 쓰기를 적극 주장하며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작문을 가르치는 호러스 제프리 하지스(Horace Jeffery Hodges)교수는 동의어로 바꾸기, 단어형태 바꾸기, 절을 구로 혹은 구를 절로 바꾸기, 직접화법을 간접화법으로 바꾸기, 능동태를 수동태로 바꾸기, 의미를 해석하고 중요 내용을 다시 쓰기, 접속사 바꾸기, 재구조화(restructuring)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바꾸어 쓰기의 전제로, 모범이 될 수 있는 훌륭한 글과 꾸준한 노력,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읽기에서 쓰기까지
‘읽기에서 쓰기까지'(reading to writing)가 구두선(口頭禪)에 그치지 않으려면 우리가 읽고 쓰는 과정에서 많은 훌륭한 인물을 만나야 한다. 이들의 글을 통한 지적 활동이 인류 역사를 이끌어 왔다고 믿는다. 위대한 생각은 존재한다. 그들의 생각을 읽으며 시대에 맞는 글을 쓰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스승은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을 찾아 배우고 산출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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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오현 DYB교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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